콩남매 이야기

늦가을 콩밭에 바싹 마른 콩꼬투리가 ‘톡’ 소리 내며 터집니다.
탁타닥, 툭두둑…..
그 소리 사이로 참새들이 쌩쌩 날며 떨어진 아기 콩들을 채 갑니다.
달달달…달달달…
상모에 달린 모터로 종이 깃을 휘날리는 우스꽝스러운 말뚝이 허수아비가 어쩌다 부는 바람에 한삼자락을 휘날리며 새들을 쫓아냅니다.
‘요놈들! 오늘이 수확하는 날인데, 너희들이 다 먹어 치워 버리면 내가 혼쭐이 난다는 말이다. 어서 썩 꺼져!”
천둥 같은 호통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참새들은 ‘흥’ 콧방귀를 뀌며 허수아비 앞에서 약을 올리듯 떨어진 콩을 채 갑니다. 
한삼자락 휘날리며 새를 쫓던 당당한 말뚝이가 못 미더워, 올봄 할아버지는 모터 달린 상모를 씌워 놓았습니다. 말뚝이 체면이 땅에 떨어진 것을 새들도 눈치 챈 듯 했습니다.
말뚝이 발치에 작고 볼품없는 콩나무 ‘콩분이’가 살아요. 
콩분이에게는 아픈 손가락 콩남매가 있습니다. 오빠는 너무 작아서 쑥쑥 자라라고 ‘쑥콩’이라 부르고, 여동생은 어쩌다 벌레가 파먹어 튼튼하게 자라라고 ‘튼콩’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콩분이의 마음이 급합니다. 콩남매가 들어 있는 작은 꼬투리는 아직 덜 말라서 벌어질 기미가 없어 애가 탑니다. 쓸모없다고 버려지기 전에 땅으로 보내어 운명에 맡겨볼 수밖에 없습니다. 콩분이는 힘껏 콩대를 비틀어 꼬투리를 떨어뜨려 보려 하지만 어림없습니다. 말뚝이의 귀에도 콩분이가 끙끙대며 애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 콩분이를 보는 말뚝이의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말뚝이가 한숨을 내쉽니다. 중절모, 밀짚모자, 꽃 모자를 쓴 이웃 허수아비들과 함께 한바탕 춤을 추던 지난 날이 떠올라 절로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이웃 허수아비의 빈자리를 사납게 햇빛을 반사하는 은박테이프가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쓸모 없으면 버려지는 거야.’ 
새옷 한번 걸쳐보는게 소원 이랬던 허수아비들 대신 은박테이프가 콩밭을 차지했습니다. 말뚝이도 언제 버려질 지 모릅니다.
그때 탈탈탈 콤바인 소리를 물고 한줌 바람이 콩밭을 스쳐 지나갑니다.
다급한 콩분이가 멀어져가는 한줌 바람을 애타게 바라봅니다.
땅을 울리는 콤바인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려왔고, 멀리 주인 할아버지도 보였습니다. 말뚝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한삼자락을 휘날리며 새를 쫓아내야 할아버지의 예쁨을 받을 텐데, 주위에 한줌 바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야속하게도 줄기 바람은 저 멀리 콩밭의 은박테이프와 함께 새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때 발 밑에서 콩분이가 다급하게 말뚝이를 불렀습니다.
“말뚝이 허수아비님, 도와주세요. 불쌍한 콩남매 좀 도와주세요. 콤바인이 곧 들이닥칠것 같아요.”
“콩분아. 걱정마라. 나도 지금 내 친구 줄기 바람의 도움이 간절하단다.”
말뚝이는 온 힘을 다해 줄기 바람을 불렀습니다.
“줄기 바람아! 줄기 바람아! 나 좀 도와줘!”
말뚝이의 외침에 한달음에 줄기 바람이 달려왔습니다.
“말뚝아, 무슨 일이지?”
“가엾은 콩분이를 위해 꼬투리를 흔들어 땅에 떨구어 주기만 하면 되네.”
“알았어. 친구의 부탁인데!”
줄기 바람은 신이 나서, 말뚝이와 콩분이를 세차게 휘돌아 감으며 흔들어 대었습니다. 말뚝이도 한삼자락을 펄럭이며 줄기 바람을 응원했습니다.
그러나, 콩꼬투리는 흔들리기만 할 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휴, 내 힘으로는 어림없는 걸.”
줄기 바람은 한줌 바람만큼 쪼그라져 숨만 헐떡였습니다.
어느새 콤바인이 콩밭에 다가왔습니다.
말뚝이도 줄기 바람도 허탈하게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콤바인이 입을 쩍 벌리며 콩나무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탈탈탈탈 굉음을 내며, 집어삼킨 콩나무는 쇠갈고리로 콩깍지만 벗긴 뒤 골라낸콩들은 자루에 담고, 나머지는 잘게 잘라 콤바인 엉덩이 뒤로 뱉아냅니다.
콤바인이 달달 떠는 콩분이의 코앞까지 덮치자, 콩분이는 체념한듯 두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콤바인의 커다란 입이 콩분이를 덮치는 순간 콩분이는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한 순간에 모두 콤바인의 거대한 입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말뚝이만 달랑 남은 콩밭은 황량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뚜벅뚜벅 말뚝이에게 다가갑니다. ‘수고했다.’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쓰다듬어 주시면 더 좋지요. 말뚝이는 
할아버지의 손길을 기대하며, 멀뚱멀뚱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고생했다.”
하면서 할아버지는 말뚝이를 쑥 뽑아 밭고랑에 던져버렸습니다.
말뚝이는 턱 말문이 막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습니다.
해가 지자 콩밭의 자욱한 먼지들이 말뚝이 위로 쌓이고, 뒤이어 찾아온 어둠이 덮어버립니다.

다음날 마을 어귀 아스팔트 도로 위로 콩 자루들이 경운기에 실려 나왔습니다. 자루 안은 철없는 아기 콩들이 소풍이라도 나온 양 흥겨움으로 들썩들썩했습니다. 다른 콩 자루도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나는지 환호성으로 콩 자루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번쩍 들려진 콩 자루 입이 벌어지자, 아기 콩들은 우루루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졌지만, 아기 콩들은 미끄럼틀이라도 탄 듯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아스팔트 도로에 펼쳐 놓은 멍석에다 할아버지가 콩 자루를 쏟아내고,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콩들을 펼쳐놓습니다. 쓰윽 헤치며 펼치는 할머니의 거친 손에 아기 콩들은 이리 쿵 저리 쿵 휩쓸리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구르기 놀이에 신이 났습니다. 할머니의 손이 스치는 대로 아기 콩들은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트립니다. 
할머니의 손길로 나란히 누운 콩들은 재잘거리며 멍석 위에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그때 까만 아스팔트 위에 내팽개쳐진 콩이 외쳤습니다.
“누가 좀 도와줘. 썩었다고 날 여기다 내팽개쳤어.”
아기 콩들이 일제히 소리 나는 곳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자동차 한 대가 쌩하니 썩은 콩을 밟고 지나쳐 갑니다. 아기 콩들의 시선은 부서진 콩보다는 멀어져 가는 자동차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며 탄성을 내뱉습니다. 신나는 세상을 만난 듯합니다. 놀란 쑥콩이 황급히 튼콩의 옆구리 상처를 감싸며, 
“숨자, 들키지 않으면 돼.”
하면서 다른 콩들 사이로 파고들어 숨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본 아기 콩들은 ‘어, 숨바꼭질. 재미있겠는 걸.’ 하면서 서로를 파고들며 들썩였습니다. 
가끔 자동차가 쌩하니 달려가면, 누가 더 멋지게 놀라 쓰러지나 기절 놀이를 하며 배꼽을 잡고 깔깔거립니다.
“영감, 볕이 좋아 잘 마르겠어요.”
“그러게, 내년에도 볼 수 있으려나…. 이젠 힘에 부쳐”
노부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사나흘 밤낮으로 신나게 놀던 아기 콩들은 피곤함에 하나둘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봄이 왔습니다. 할아버지 댁 뒷산에 연분홍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싱숭생숭한 봄바람은 들로 산으로 봄소식을 전하느라 바쁩니다.
“엄마, 얼마나 불려?”
시골집에 다니러 온 할머니의 막내딸이 아기 콩들이 담긴 함지박에 물을 부으며 물었습니다.
“서너 시간 불렸다가, 시루에서 키우면 돼.”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서 시루 안 빽빽이 들어찬 노란 콩나물을 한 움큼씩 뽑아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습니다. 막내딸이 할머니 옆에 앉으며,
“그만 싸. 너무 많아. 마트에 가서 사서 먹으면 되는데, 뭘 힘들게…”
“많기는 뭐가, 무쳐도 먹고, 국도 끓여 먹고, 콩나물밥도 해 먹어. 남으면 옆집도 좀 나눠주고… 엄마가 매일 물 주며 정성스럽게 키운 것과 사 먹는 것이 같아. 이렇게 키워 장날에 내다 팔면 쏠쏠하게 손주 줄 쌈짓돈도 생기는데….”

우물가 함지박 안에서 찬물이 아기 콩들의 몸속으로 퍼지자 아기 콩들의 숨이 터졌고, 심장이 다시 콩닥콩닥 뛰고 있었습니다. 아기 콩들은 통통하게 다시 살이 오르고, 윤기가 자르르 흘렀습니다. 아기 콩들은 찰랑찰랑 발끝에 걸리는 물장구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때마침 구름 속에서 쏙 빠져나온 해님이 함지박 물속에 햇살 기둥을 만들자, 아기 콩들은 햇살 기둥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를 탑니다. 콩 남매도 물장구치며 노는데, 돌연 튼콩의 몸이 불쑥 떠오르고 쑥콩의 몸은 아래로 쑥 내려앉습니다. 덩달아 아기 콩들도 아래로 가라앉자 자맥질로 함지박 바닥 치기 놀이를 벌입니다. 함지박의 아기 콩들은 햇빛과 물로 잔치라도 벌인 듯 흥겨웠습니다.
해 질 녘 할머니가 바리바리 싸준 보따리를 차에 싣고 막내딸은 떠났습니다. 
놀이에 지친 아기 콩들은 함지박 바닥에서 풋잠에 빠졌지만, 여전히 물 위에 떠 있는 튼콩이 걱정에 쑥콩이는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할머니의 주름지고 투박한 손이 함지박 위로 불쑥 들어왔습니다. 아기 콩들은 화들짝 놀라 일제히 위를 보았습니다. 손은 갈고리처럼 물에 뜬 콩들을 떠내어 휙 어디론가 던져버립니다. 너무 순식간이라 화들짝 놀란 쑥콩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할머니의 손길은 함지박 안을 휘저어 깨끗한 물로 씻어내고는, 숭숭 구멍이 뚫린 시루 안에 면 보자기를 깔고, 면 보자기 위에 아기 콩들을 깔아 놓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할머니는 허리 한번 펴고는 함지박 채 안방 윗목에 놓고는, 검은 천으로 덮어 놓았습니다. 아기 콩들은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온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넋이 나간 쑥콩도 철퍼덕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튼콩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추위도 칠흙 같은 밤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혼자가 되었는지, 오빠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인지 오돌오돌 떨려왔습니다. 
“엄마, 어떻게 해…. 오빠를 잃어버렸어.”
튼콩은 얼굴을 묻고 훌쩍였습니다. 그때 아래쪽에서 훅 엄마 냄새가 코로 들어옵니다. 
“어, 이 냄새는…. 엄마 냄새?”
꽃샘추위에 살짝 얼어붙은 땅은 딱딱했지만, 흙더미 틈 사이에 낀 튼콩은 마치 엄마 품 안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밤하늘에 눈발이 날립니다. 눈은 하얀 솜이불처럼 튼콩을 덮어주었습니다. 흙냄새도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 같았습니다. 튼콩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시루 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습니다. 시루는 검은 무명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물이 담긴 자배기 위로 쳇다리가 놓여있고, 그 위로 시루가 얹혀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명천을 들춰내고 자배기의 물로 아기 콩들을 촉촉하게 적셔주었습니다. 유쾌한 아기 콩들은 시루 안을 운동장삼아 으쌰으쌰 근력운동을 하였습니다. 흠뻑 땀에 젖은 아기 콩들을 할머니가 물을 뿌려 깨끗이 목욕도 시켜주고 갈증도 풀어주었습니다. 아기 콩들은 할머니의 귀염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운동을 하였습니다. 헤어진 튼콩이를 만나려면 운동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쑥콩은 다른 아기 콩보다 더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으로 아기 콩들은 쑥쑥 자랍니다. 쭉쭉 뻗은 매끈한 다리에 샛노란 얼굴로 내가 더 멋쟁이라고 뽐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유쾌한 아기 콩들은 어깨를 맞대고 흥겹게 노래를 부릅니다. 
시루를 덮은 검정 무명천이 들썩일 만큼 콩들이 자랐을 때, 우물가로 시루를 들고나온 할머니는 함지박에 콩나물을 쏟아내고는 찬물로 깨끗이 씻어주었습니다. 콩나물들은 들떠 있었습니다. 깨끗이 단장하고 좋은 곳으로 보내줄 것 같았습니다. 정말로 할머니는 종이상자에 담았습니다. 쑥콩이만 애타게 튼콩이를 찾았지만, 무참히도 종이상자 뚜껑이 닫쳤습니다. 
달달달달…. 시골 장터로 콩나물을 팔러 할아버지의 경운기가 마을을 떠납니다. 할머니는 모처럼 나들이에 한껏 멋을 내셨네요.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완연한 봄이 우물가 옆 텃밭에도 찾아왔습니다. 연두색 떡잎 사이로 작은 새싹이 올라왔습니다. 떡잎 한쪽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을 보니 튼콩이었습니다. 허약한 몸으로 기어코 뿌리를 내리고 싹까지 올렸으니, 언젠가 콩분이 엄마처럼 콩나무로 자랄 겁니다. 그 후로 튼콩이는 할머니가 콩나물 키우는 것을 여러 차례 보면서 쑥콩 오빠를 왜 다시 만날 수 없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왜 쑥콩, 튼콩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그렇게 애써서 땅으로 보내려 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쓸모없다고 버려진 튼콩이가 이제는 예뻐 보이는지 가문 날에는 할머니가 흠뻑 물을 뿌려 적셔주니까요.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혼자 남은 할머니가 언제까지 지켜줄지 알 수 없습니다. 튼콩이 파란 하늘을 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오빠 몫까지 쑥쑥 튼튼하게 자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