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바인이 입을 쩍 벌리며 콩나무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탈탈탈탈 굉음을 내며, 집어삼킨 콩나무는 쇠갈고리로 콩깍지만 벗긴 뒤 골라낸콩들은 자루에 담고, 나머지는 잘게 잘라 콤바인 엉덩이 뒤로 뱉아냅니다.
콤바인이 달달 떠는 콩분이의 코앞까지 덮치자, 콩분이는 체념한듯 두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콤바인의 커다란 입이 콩분이를 덮치는 순간 콩분이는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한 순간에 모두 콤바인의 거대한 입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말뚝이만 달랑 남은 콩밭은 황량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뚜벅뚜벅 말뚝이에게 다가갑니다. ‘수고했다.’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쓰다듬어 주시면 더 좋지요. 말뚝이는
할아버지의 손길을 기대하며, 멀뚱멀뚱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고생했다.”
하면서 할아버지는 말뚝이를 쑥 뽑아 밭고랑에 던져버렸습니다.
말뚝이는 턱 말문이 막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습니다.
해가 지자 콩밭의 자욱한 먼지들이 말뚝이 위로 쌓이고, 뒤이어 찾아온 어둠이 덮어버립니다.
다음날 마을 어귀 아스팔트 도로 위로 콩 자루들이 경운기에 실려 나왔습니다. 자루 안은 철없는 아기 콩들이 소풍이라도 나온 양 흥겨움으로 들썩들썩했습니다. 다른 콩 자루도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나는지 환호성으로 콩 자루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번쩍 들려진 콩 자루 입이 벌어지자, 아기 콩들은 우루루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졌지만, 아기 콩들은 미끄럼틀이라도 탄 듯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아스팔트 도로에 펼쳐 놓은 멍석에다 할아버지가 콩 자루를 쏟아내고,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콩들을 펼쳐놓습니다. 쓰윽 헤치며 펼치는 할머니의 거친 손에 아기 콩들은 이리 쿵 저리 쿵 휩쓸리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구르기 놀이에 신이 났습니다. 할머니의 손이 스치는 대로 아기 콩들은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트립니다.
할머니의 손길로 나란히 누운 콩들은 재잘거리며 멍석 위에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그때 까만 아스팔트 위에 내팽개쳐진 콩이 외쳤습니다.
“누가 좀 도와줘. 썩었다고 날 여기다 내팽개쳤어.”
아기 콩들이 일제히 소리 나는 곳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자동차 한 대가 쌩하니 썩은 콩을 밟고 지나쳐 갑니다. 아기 콩들의 시선은 부서진 콩보다는 멀어져 가는 자동차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며 탄성을 내뱉습니다. 신나는 세상을 만난 듯합니다. 놀란 쑥콩이 황급히 튼콩의 옆구리 상처를 감싸며,
“숨자, 들키지 않으면 돼.”
하면서 다른 콩들 사이로 파고들어 숨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본 아기 콩들은 ‘어, 숨바꼭질. 재미있겠는 걸.’ 하면서 서로를 파고들며 들썩였습니다.
가끔 자동차가 쌩하니 달려가면, 누가 더 멋지게 놀라 쓰러지나 기절 놀이를 하며 배꼽을 잡고 깔깔거립니다.
“영감, 볕이 좋아 잘 마르겠어요.”
“그러게, 내년에도 볼 수 있으려나…. 이젠 힘에 부쳐”
노부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사나흘 밤낮으로 신나게 놀던 아기 콩들은 피곤함에 하나둘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봄이 왔습니다. 할아버지 댁 뒷산에 연분홍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싱숭생숭한 봄바람은 들로 산으로 봄소식을 전하느라 바쁩니다.
“엄마, 얼마나 불려?”
시골집에 다니러 온 할머니의 막내딸이 아기 콩들이 담긴 함지박에 물을 부으며 물었습니다.
“서너 시간 불렸다가, 시루에서 키우면 돼.”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서 시루 안 빽빽이 들어찬 노란 콩나물을 한 움큼씩 뽑아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습니다. 막내딸이 할머니 옆에 앉으며,
“그만 싸. 너무 많아. 마트에 가서 사서 먹으면 되는데, 뭘 힘들게…”
“많기는 뭐가, 무쳐도 먹고, 국도 끓여 먹고, 콩나물밥도 해 먹어. 남으면 옆집도 좀 나눠주고… 엄마가 매일 물 주며 정성스럽게 키운 것과 사 먹는 것이 같아. 이렇게 키워 장날에 내다 팔면 쏠쏠하게 손주 줄 쌈짓돈도 생기는데….”